[시스티나 예배당] - '펜티멘티'(후회)
후회하고 있는지도 몰랐다. 하나님도 노아도 그리고 미켈란젤로도 말이다. 노아의 홍수를 그리면서 수 많은 수정 작업이 반복되었다. 4주 이상이나 걸렸다. 이제 시작인데 작업량은 기를란다요의 하루 평균 작업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. 처음 작업이라 그럴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곰팡이라는 복병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.
매일 12미터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가야 했다. 비계 위에 5-6명이 누워서가 아닌 직립한 채로 작업해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. 계속되는 수정 작업에 점점 대화는 사라졌다. [노아의 홍수]에 새겨진 사람들처럼 두려움과 불안이 우리의 표정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. 아니 미켈란젤로는 그런 우리의 표정을 기다렸다는 듯이 천정에 담아내고 있었다.
그림이 완성하기 까지 무려 열 댓 개나 뜯어 내야만 했다. 프레스코에서 수정(펜티멘티) 작업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. 덧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. 만약 석고가 마르기 전이라면 긁어내면 되지만 일단 다 마르고 나면 망치와 끌을 통해 1조르나타의 석고를 통째로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. 탐욕스런 '브라만테'의 야욕에 넘어간 것이다. 오만하고 엄청난 포부와 욕망을 가진 그의 이름은 이탈리어로 '굶주림'이었다.
어릴 적 구름 다리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. 팔에 손톱 만큼의 금이 가서 깁스를 했는데 석고의 빠른 응고와 한번 굳어 버린 석고의 단단함을 아직도 기억한다. 깁스한 팔은 친구들 사이에서 무적에 가까웠다.
아무튼 무려 열 댓 개나 뜯어 내야만 했다. [노아의 홍수] 장면 가운데 왼쪽 부위 반 이상을 다시 그려야만 했다. 처음부터 너무 큰 착오와 시련의 연속이었다. 자세들이 '카시나 전투'의 자세와 유사하며 '켄타우루스의 전투'와 비슷했다. 그 만큼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부터 시작했던 것이다. 하지만 그림 한 쪽 바위 모서리에 무기력하게 축 늘어진 젊은이를 노인이 두 팔로 붙잡는 장면은 그런 미켈란젤로의 심정을 잘 나태내는 것 같았다. 모두들 힘든 작업이었다. 다만 위안이 된다면 [노아의 홍수] 그림 위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이라는 점일 것이다.
미켈란젤로는 처음 부터 베네치아가 아닌 피렌체의 재료를 고집했다. [노아의 홍수]에 표현된 하늘과 물은 현미경으로 보면 가루도 된 유리파편과 공기 방울을 볼 수 있다. 스말티노라고 하는 이것은 제수아티 수도사들이 제조한 것이다. 코발트가 함유된 색유리를 빻은 것이다. 코발트는 부식성과 유독성분 비소를 함유하고 있는데 살충제로 쓰일 정도로 독한 것이다. 아무나 제조할 수 없는 재료였다.
미켈란젤로는 안료들을 직접 빻아서 사용했는데 붓은 거의 거세당한 수퇘지의 억센 털이 였다. 그의 고집스러움이 작업을 힘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. 사람들은 하나 둘 고개를 젖었다. 아무것도 모르는 나로서는 그냥 지켜 볼 뿐이다.
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당시 사용한 기법은 붓에 안료를 가득 묻힌 다음 엄지와 집게 손가락 사이에 끼어 넣고 짜서 여분의 물기를 제거해서 칠했다.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. 오히려 안료를 물에 코팅한 것 같이 묽게 하고 붓에 잔뜩 묻힌 다음 반원 공간에 칠해 고곳에서 수채화 같은 투명한 효과를 냈다.
'해외여행 > 바티칸' 카테고리의 다른 글
피에타(자비를 베푸소서) [이탈리아 바티칸 여행 미켈란젤로 작품] (0) | 2013.10.31 |
---|---|
[시스티나 예배당] 드디어 노아의 홍수를 그리다. (0) | 2012.10.16 |
[시스티나 예배당] 혼동 - 여행의 시작 (0) | 2012.10.16 |
[시스티나 예배당] 만남! 미켈란 젤로를 만나다. (0) | 2012.10.16 |
[시스티나 예배당] 지루한 줄서기 (0) | 2012.10.16 |
[시스티나 예배당] 발걸음 - Cappella Sistina를 향해 (1) | 2012.10.16 |